인간은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속담처럼 자신의 큰 흉은 보지 못하고 남의 작은 흉을 보는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본성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죄에는 아주 둔감하면서 타인의 죄에는 매우 민감한 '내로남불'의 모습은 타락한 본성의 어두운 단면이다. 예수님께서는 타인의 눈에서 티끌을 발견하기 전에 자기 눈에 있는 들보를 먼저 빼라고 하실 정도로 이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신다. 오늘 본문은 마치 법정의 재판 실황 중계처럼, 음행 중에 잡힌 피고를 두고 검사와 변호인 사이에 불꽃 튀는 설전이 벌어지는 현장으로 우리를 안내하며, 결과적으로 변호인이신 예수님의 압도적 승리를 보여준다.
1. 정죄는 NO!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 사람들 가운데 세우고, 모세의 율법을 내세워 예수님을 올무에 빠뜨리려 시험한다. "모세는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라는 그들의 질문은 예수님을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함이었다. 이에 예수님은 몸을 굽혀 땅에 무언가를 쓰신 후, 7절 하반절 말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치명적인 말씀을 던지신다. 이는 정죄의 자격을 문제 삼으신 것으로, 의인은 하나도 없으며 모두가 하나님 앞에 냄새 풀풀 풍기는 더러운 죄인이라는 실상을 폭로하신 것이다. 9절의 말씀을 들은 이들은 양심의 가책이라는 쓰나미에 직면하여, 어른으로부터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손에 든 돌을 내려놓고 하나씩 슬며시 그 자리를 떠나게 된다.
2. 용서는 YES!
현장에는 오직 예수님과 그 가운데 선 여자만 남게 되며, 주님은 정죄 받아 마땅한 여인에게 아무런 조건 없는 무죄 처분과도 같은 용서의 선언을 내리신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는 말씀은 단순한 용서를 넘어선 해방과 자유, 그리고 죄와의 단절을 의미하는 거룩한 삶으로의 초대다. 예수님은 여자의 추악한 과거가 아니라 그녀의 현재와 미래에 관심을 두시며, 심판이 아닌 구원을 베풀기 위해 오셨음을 증명하신다. 사도 바울의 로마서 8장 1-2절 말씀처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으며, 생명의 성령의 법이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영원히 해방하였음을 보여주시는 놀라운 사건이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죄를 용서받은 죄인인 동시에, 이 육신을 입고 사는 동안 계속해서 주님의 자비와 긍휼로 살아야 할 연약한 존재들이다.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수준 등을 근거로 자기는 남보다 낫다는 특권 의식이나 우월 의식에 사로잡혀 타인을 정죄하는 것은 대단히 비성경적인 위험한 생각이다. 우리 가정과 교회는 서로 비난하기보다 감싸주고 품어주는 따뜻한 공동체가 되어야 하며, 정죄의 눈이 아닌 용서의 눈으로 상대를 바라보는 예수님이 바라시는 참된 제자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끝으로 우리 모두 꼭 기억하고 실천해야 할 한마디가 있다.
"정죄는 NO, 용서는 YES!"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