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공리주의는,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최대한의 쾌락을 가져다주는 것을 도덕적 최고선으로 내세운다. 그러나 인간의 본능은 무한 쾌락을 추구하는 반면 재화는 절대적으로 부족하기에 살벌한 경쟁이 초래된다. 유물론에 갇힌 현대인들은 하나님 나라나 내세와 같은 초월적 실체를 부정하며, 철저히 물질세계 안에서 제한된 재화를 얻기 위해 몸부림친다. 사도 바울의 지적(고전15:19, 32)처럼 만일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라면 우리는 모든 사람 가운데 더욱 불쌍한 자일 것이며,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는 식의 삶이 정당화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부활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상황은 180도로 달라지고 말 것이다.
첫째, 성경은 부활의 실재성을 명확히 증언한다. 성경은 예수님의 부활이 500명 이상의 증인이 목격한 역사적 사건이며, 그리스도께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음을 명확히 증언한다(고전 15:20). 부활은 이 유한한 삶을 영원으로 무한히 확장시킴으로써 사람들을 무한 경쟁으로 내몰던 가장 큰 울타리를 무너뜨린다. 지금 이 세상에서 충분한 쾌락을 누리지 못하고 경쟁에 목매달 필요가 없는 이유는, 부활을 통해 영원히 지속되는 시간 안에서 무궁무진하게 쾌락을 누릴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둘째, 부활은 신자의 부활과 불신자의 부활까지 포함한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말씀한다. 무한 경쟁이 판을 치는 사회에서 불신자들은 승리를 위해 타인을 짓밟으며 쾌락을 향해 달려가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 이런 행동은 악하며 그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인 지옥이다. 따라서 부활 소식은 불신자들에게는 무분별한 쾌락 추구 행위를 견제하는 두려움의 근거가 된다.
셋째, 불신자만 부활 이후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게 아니다. 신자 또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 이는 믿음의 터 위에 세운 집의 비유와 같다. 이 세상에서 불신자처럼 쾌락 추구에 집착하여 나무나 풀, 짚으로 집을 세운 신자는 하나님의 심판 날에 준엄한 책망과 함께 알몸으로 겨우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반면 쾌락을 절제하며 금, 은, 보석으로 집을 세운 자는 하나님의 칭찬을 받게 된다.
넷째, 부활은 영원한 복락에 들어가는 관문이다. 최고의 복락을 누리는 비결은 치열한 경쟁이 아니라,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는 아주 쉽고 단순한 방법이다(롬 10:10).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갓생’ 열풍은 열심히 사는 아름다운 모습처럼 보인다. ‘갓생(God生)’은 신처럼 완벽한 삶이라는 뜻이다. 그 이면에는 현대 자본주의의 도태에 대한 불안과 무한 경쟁의 풍토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주님은 높은 자리에 올라 대접받는 경쟁이 아니라 도리어 낮아져서 섬기는 삶을 바라신다. 쾌락(행복) 탐닉의 삶은 결국 주님과 상관없는 영원한 고통을 초래하므로, 신자는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고전 15:58). 부활의 아침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물으신다. ‘그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했는가?’ 부활의 확신을 가진 자는 아무것도 없는 가난한 자 같으나 사실은 모든 것을 다 가진 부유한 자이며, 주 안에서의 모든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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