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뮤니티   >   담임목사 칼럼
담임목사 칼럼
나 아빠 집으로 돌아갈래!(눅 15:13-17, 25-32절)
2025-10-11 19:44:56
디지탈사역실r
조회수   15

  본문의 비유 속 둘째 아들은 늘 더 나은 삶을 간절히 그리워한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둘째 아들과 같다. 본래 우리는 하나님의 동산에서 살도록 창조되었다. 거기가 본래 우리 모두의 집이다. 우리는 그 집에서 행복하게 살도록 지음을 받았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이 그 집의 아버지시라고 가르친다. 문제는 본문의 비유에서처럼 우리가 그 아버지의 권위에 반감을 품은 것이다. 우리는 그분의 간섭 없이 살고 싶어 등을 돌린다. 그리하여 그분과 멀어지고 만다. 둘째 아들이 집을 잃은 것처럼 우리도 집을 잃었다. 그 결과가 바로 유랑이다. 성경에 따르면 그 뒤로 인류는 영적 유랑자가 되어 방황하는 중이다. 누구나 건강한 몸을 원하나 질병과 노화와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영원한 사랑이 필요하건만 모든 관계는 세월 따라 속절없이 무너진다. 그때 예수님이 마치 혜성처럼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신다. 자신이 하나님의 나라를 들여놓고 있다고 선포하신다. 하지만 그분은 그들의 기대에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 그러다가 생애 끝에 그분은 도성의 성문 밖에서 십자가에 달리신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무엇일까? 우리 모두를 죄와 악과 죽음 자체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그분은 강함으로가 아니라 약함으로 오신다. 그분이 오셔서 겪으신 유랑은 마땅히 우리가 당해야 할 몫이다. 그분은 우리 대신 영적 소외라는 극한의 절망과 어둠 속에 던져지신다. 인류의 반항에 대한 모든 저주와 우주적 실향을 친히 당하신다. 그분은 우리를 용서하셔서 집으로 데려가시려고 세상 죄 때문에 희생되신다. 예수님의 구원은 잔치이다. 그분의 사랑은 꿀이나 포도주와 같다. 우리는 그분의 사랑을 믿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랑의 실체와 아름다움과 위력을 느낀다. 그분의 사랑은 어느 누구의 사랑보다도 더 절절하다. 그 사랑이 우리에게 기쁨과 활력과 위로와 소망을 준다. 예수님은 자신이 기억될 수 있도록 주의 만찬이란 식사를 남기신다. 역사의 최종 목표도 어린 양의 혼인 잔치라는 식사이다. 그래서 성경은 여호와의 선하심을 믿고 동의하는 데 그치지 말라고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라고 이야기한다.

  내가 복음을 믿을 때,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와 새로운 정체성을 받는다. 하지만 일단 믿어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해서 다 끝난 건 아니다. 아직 변화와 성장이란 과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내가 복음을 더 깊이 이해하고 마음에 속속들이 배어들게 해야 한다. 복음의 내면화 혹은 생활화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나는 복음을 늘 섭취하고 소화해야 한다. 복음을 나의 일부로 삼아야 성장할 수 있다. 여기에 동생의 자아 발견과 형의 도덕적 순응이란 두 길이 있다. 사실상 둘 다 막다른 골목일 뿐이다. 3다른 길, 완전하고도 완벽한 딱 하나의 길, 예수님 자신이 우리에게 있다. 우리는 그 길로 들어가 그분의 구원에 기초해 살아가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역사의 종말에 최고의 잔치와 만찬에 이를 것이다. 또한 미래의 그 완성될 구원을 지금 여기서 미리 맛볼 수 있다. 예를 들면 기도, 다른 사람들을 섬김, 복음이 초래한 내적 본성의 변화, 복음으로 치유된 관계 등등이다. 이 모든 좋은 걸 맛보다니 참으로 풍성하고 행복한 삶이다. 아무리 그처럼 좋다 해도 이것들은 장차 올 일의 맛보기에 불과하다. 하늘 아버지께서 준비하신 완전하고 완벽한, 최고의 잔치가 우리를 기다린다.

 

댓글

댓글쓰기 권한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