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뮤니티   >   담임목사 칼럼
담임목사 칼럼
십일조, 그 뿌리를 찾아서!(창 14:17-24절)
2025-10-18 22:03:09
디지탈사역실r
조회수   7

  십일조는 용도 폐기된 구약 시대의 율법인가? 아니면 신약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성도를 위한 복음인가?’ 십일조 폐지론자들은 우리가 더 이상 십일조의 율법에 매일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반면에 십일조 유지론자들은 십일조는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실은 십일조가 폐지되었느냐 아니냐의 논쟁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그것은 십일조가 보여주는 거룩한 삶의 양식 무엇이냐는 점이다. 23:23절 말씀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예수님의 관심은 십일조의 상세한 규정이 아니라 십일조가 보여주는 거룩한 삶의 양식임을 알 수 있다. 곧 정의와 긍휼과 믿음의 삶의 방식 말이다. 예수님의 십일조 정신은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이다. 이 시간 우리 자신을 점검해 보자. 현재 십일조를 드리고 있다면, 나 자신의 삶을 돌아봐야 한다. 내가 긍휼과 정의의 삶을 살고 있는지를 말이다. 만약 내게 소득이 있는데도 아직 십일조를 드리지 않고 있다면 어떨까? 십일조를 드리는 다른 사람들의 삶에 문제가 많다고 비판만 해선 안된다. 그 대신 자신의 삶이 자비롭고 정의로운지 살펴야 한다. 그리고 십일조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만약 삶은 정의로운데 십일조를 하지 않고 있다면 어떨까? 왜 굳이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지 않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성경에 십일조란 드리는 자가 소유한 모든 것을 대표하여 십분의 일을 드리는 것이다. 한마디로 십일조란 십분의 일로서 전체를 대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핵심 개념은 대표성이다. 솔직히 십일조를 바치면 복을 받는다란 식의 표현은 상당히 아쉽다. 성경의 십일조 정신을 너무 빈약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주객이 전도된 표현이기 때문이다. 십일조는 결코 하나님께 축복을 받기 위해 보험용으로 미리 드리는 예물이 아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이 이미 승리케 하시고 축복을 주셨기에,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리기 위해 드리는 감사의 예물이다. 그렇다고 해서 십일조에서 축복의 개념을 완전히 제거해선 안된다. 그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다.

  아브라함의 십일조는 거룩한 하나님 백성의 삶의 양식이다. 아브라함의 십일조는 예수님의 십일조 정신의 구현이다. 다시 말해 정의와 긍휼과 믿음의 삶이다. 십일조의 핵심은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이다. 십일조는 모든 것을 드린다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십일조는 감사하며 찬양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예물이다. 이 시간 각자 자기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점검해보자. 지금까지 십일조를 단순한 재정 헌신이나 의무로만 이해한 것은 아닌가? 내게 십일조의 출발점은 무엇인가? 내 삶 속에 하나님이 이미 주신 은혜승리에 대한 감사가 맞나? 오늘 내 신앙은 세상의 give-and-take 논리와 얼마나 구별되고 있나? 십일조를 포함해 내가 드리는 예물이나 헌신 가운데 예수님의 정신이 잘 반영되고 있나? 다시 말해 내 삶 가운데 정의와 긍휼과 믿음이 드러나고 있나? 혹시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변화가 필요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댓글

댓글쓰기 권한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