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머나는 로마 황제 숭배의 중심지로 유명하다. 원래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자들인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만왕의 왕이요 만유의 주로 예배하는 자들이다. 로마 제국의 입장에선 황제 숭배를 거부하는 이교도들이다. 일종의 반역자들인 셈이다. 현재 서머나 교회 성도들의 환경은 지독히 열악하다. 그럴지라도 그들은 신앙의 순수성을 끝까지 지켜야만 한다.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뭔가 새로운 동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예수님은 죽음을 극복하시고 부활하신 모습으로 등장하신다. 이제 10절에 서머나 교회를 향한 주님의 권면이 나온다.
첫 번째 권면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보통 고난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무엇인가? 십중팔구 고난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고난을 두려워한다. 고난에는 눈물과 고통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가급적 고난을 피하고 싶어 한다. 인간의 본성이라 무조건 욕할 수도 없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고난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고난을 면제시켜 주시지 않는다. 고난에 올바르게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고난의 목적은 성도들에 대한 시험이다. 이 시험은 거짓된 믿음과 참된 믿음을 구별하는 효과적 기준이다. 마귀가 활동하는 세상은 늘 그렇다. 항상 그리스도인들에게 적대적이라 박해를 일삼는다. 그렇다고 이 시험 기간이 오래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부활의 능력을 지니신 예수님이 아니신가? 예수님은 고난 속에 있는 나를 그냥 방치하시지 않는다. 내 영혼을 능히 안전하게 지켜주신다. 심지어 내가 죽임을 당할지라도 괜찮다. 내겐 찬란한 영광의 부활이 기다리고 있다. 나는 죽어도 다시 사는 특별한 존재이다.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자. 고난 앞에서 목숨을 구걸하려고 신앙을 버리지도 말자. 오히려 고난을 내 믿음의 진정성을 증명하는 기회로 삼자.
두 번째 권면은 죽도록 충성하라는 것이다.
이 권면이 암시하는 것은 무엇일까? 죽음의 순간에 이르기까지 신실함을 잃어버리지 말라는 뜻이다. 죽음은 세상의 삶을 마감하는 최종 과정이다. 그런데 그때까지 신실하라고 권면한다. 어떤 경우에라도 신실함을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그러면 예수님이 생명의 관을 주실 것이다. 이 생명의 관은 영원한 생명을 상징한다. 이 ‘생명’은 ‘죽기까지’의 ‘죽음’과 대조된다. 놀랍게도 죽기까지 신실할 때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죽음은 영원한 생명으로 연결된다. 죽기까지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면 기적이 발생하는 것이다. 늙고 병들어 죽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우리 인생이 아닌가? 이런 우리 인생에게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우리가 불멸의 인생이 되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이 세상에서 끝까지 붙들어야 할 것은 신실함이다. 하나님 앞에서의 신실함이다. 신실함을 포기하는 대가로 죽음을 피하는 것은 어떨까?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일이다. 어차피 누구나 한 번은 죽을 목숨이다. 죽음이 예정된 그 생명조차 얼마나 짧은지 모른다. 영원한 생명과 비교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과연 하나님의 눈에 비친 우리 교회의 모습은 어떨까? 영적인 거지의 삶은 절대 사절이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만 있으면 된다. 그 어떤 고난도 두려워하지 말고 당당히 맞서자. 하나님 앞에서 죽기까지 신실하자. 하나님이 이기는 자인 내게 영생의 선물을 주실 것이다.
댓글